김수길 두번째 - 밤 산행, 금선사, 억겁의 인연
오늘은 두번째 이야기.
편집국장 시절 어느 날 문득 이런 결심을 했습니다.
그래, 1주일에 주중 하루는 반드시 저녁 약속을 하지 말자.
수요일이든, 목요일이든.
아예 수첩에 미리 [ ] 표시를 해두고.
안 그러면, 너 ,죽는다.
그래서 어느 날 수요일, 퇴근 후 저녁 간단히 하고 밤 8시부터 혼자 북한산에 올랐습니다.
이북 5도청 앞에서부터 올라가는 비봉 코스였지요.
(물론, 불법이라는 거 알고 있었지요. 규정상 야간 등반은 금지되어있고 '적발 시 30만원(?) 벌금'이란 팻말도 가끔 눈에 띕니다. 그러나 지켜지지 않을 규정은 만드는 게 아니고, 면피를 위해서 해놓는 깨알 같은 사용 설명서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지요. (economics of regulation의 101 올시다)
어떻든 비봉 능선의 관봉까지 올라 청량한 밤의 대기를 호흡하고, 발아래 벌어진 서울의 밤도 보고,
"아항, 조오기 어디서 누구 누구가 폭탄주 돌리고 있겠구나"하는 생각도 하고 내려왔습니다.
비봉 매표소까지 거의 다 내려왔을 때-.
웬 스님 한분이 산을 올라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그냥 스쳐 지나갔습니다.
다만, "밤 길 조심하십시요" "예, 다 내려오셨군요" 두 마디만 주고 받은 채.
다음 날, 여늬 때 처럼 편집국의 일상 속에 파묻혀 있던 참이었습니다.
문화 부문 에디터가 스님 한분을 모시고 편집국장 실을 노크했습니다.
"이번에 조계종 기획실장이 되신 스님입니다"
"아, 예. 이렇게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차 한 잔 하시지요"
"법안(法眼)이라고 합니다"
"어느 절에 계십니까"
"금선사에 있습니다. 범어사의 말사지요"
"북한산 비봉 올라가다가 있는 절 말씀입니까"
"잘 아시네요"
"제가 그 길 자주 갑니다. 어제 밤에도 갔었는데요"
"아니? 그러면 어제 밤 열시 쯤 내려오던?"
"예? 어제 마주쳤던?"
산을 오르던, 길을 걷던, 이렇게 우리는 억겁의 인연(부처님의 설법)을, 삶의 절묘한 낌새(정현종 시인의 시어)를 알아채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