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코 폴로 (1254-1324) ② 다시 뱃길을 건너가 신세계를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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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나는 아직 절반도 다 말하지 못했다네”
몽골의 초원에서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을 때, 마르코 폴로는 비로소 고비를 맞았다. 이국의 환상에 사로 잡혀 있던 그가 초원을 걸으며 고향을 그리워하기 시작한 것이다. 눈이 시리게 푸른 초원 때문이 아니라 전쟁 때문이었다. 초원은 붉은 피로 물들어 갔다. 날마다 과부들이 생겨났고 피에 굶주린 바람은 모든 것을 쓸어갔다.
노총각 신세로 타국의 비극을 관찰하는 마르코 폴로의 마음도 편할 턱이 없었다. 그는 수시로 왕의 눈치를 살피며 귀향의 방법을 고민했다. 그러나 칭기즈칸 후예의 권력은 지구를 다 털어도 전무후무할 만큼 굉장한 것이었기에 운을 떼는 것조차 힘겨운 일이었다. 하지만 17년은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니었다. 애초에 그가 원했던 것은 신세계로의 여행이었을 뿐이다. 그는 이국의 정주자가 될 뜻은 없었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다면 신세계 탐구는 수포로 돌아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바다 건너 고향사람들에게 이곳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 경이로움을 함께 나누어야만 진정한 신세계로의 여행이 성립될 것이었다.
마르코 폴로는 왕을 알현할 기회가 생길 때 마다 고향으로 보내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그러나 왕은 번번이 거절했다. 왕이 죽으면 신하들 역시 불 속으로 뛰어들어 군주의 저승길을 호위하는 것으로써 신하된 마지막 도리를 다 하는 이들은 마르코 폴로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왕이 전사라도 하는 날에는 마르코 폴로 자신은 어찌될 것인가.
1286년, 몽골제국의 황후가 사망했다. 마르코 폴로에게 이것은 또 하나의 기회였다. 이에 몽골의 군주는 사신단을 꾸려서 새로운 왕녀를 찾아올 것을 명령한다. 바닷길을 건너온 경험이 있는 마르코 폴로가 지휘봉을 쥐게 되었다. 내륙아시아 육로와 인도양의 뱃길을 두고 사신단의 고민이 깊었다. 그때, 십 수 년 전 정처 없는 길을 걸으며 길 떠나는 자로서의 고통을 충분히 겪었던 마르코 폴로가 앞장서서 뱃길을 추천했다.
2년 넘는 여행이 그렇게 시작됐다. 결코 쉽지 않은 길이었다. 사망한 선원 수만 수백 명에 달했다. 어쨌든 그 기회를 통해 마르코 폴로는 다시 베니스로 돌아오게 되었는데 그때 그의 나이 마흔 한 살이었다.
귀향길은 몽고로 입성하는 길 이상으로 경이로웠다.
마르코 폴로는 동남아시아의 수마트라, 자바 등의 해안 마을을 거치면서 몽골 제국의 지배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었다. 말라카 해협 너머의 섬들과 동아프리카 연안도 예외가 아니었다. 몽골제국 안에 머물면서 뼛속 깊이 실감했던 대국의 기운을 고향으로 돌아가는 해로(海路) 위에서 절감하려니 ‘아담 이래 몽골제국이 가장 막강하다’라고 큰 소리 치던 이국의 왕이 떠올라 전율이 일었다.
1295년 해가 질 무렵, 인도양을 건너 고향으로 돌아온 마르코 폴로를 위해 베니스 거리에는 팡파레가 울렸다. 이에 마르코 폴로는 기다렸다는 듯 이야기보따리를 풀어헤쳐 사람들의 환대에 응했다. 기괴하고도 흥미진진한 중국 이야기를 들으려는 사람들은 날마다 광장으로 쏟아져 나왔다. 탐험가 마르코 폴로를 찾았으며 마찬가지로 흥분한 귀족들은 앞 다투어 그들의 저녁 만찬에 탐험가 마르코 폴로를 초대하기 바빴다. 폴로 일행들은 중국인들의 옷을 입고 시내를 누비며 사람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거나 주머니 가득 동양의 진귀한 보석들을 담고 다니면서 사람들의 호기심에 불을 지폈다.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이국의 전쟁에 놀라 고향으로 돌아온 마르코 폴로는 베니스의 해전에 참전했다가 포로로 잡혀 감옥에 갇히게 된다. 어처구니없는 상황이었지만 늘 그래왔듯 그는 위기를 기회로 삼는 재치를 발휘했다. 감옥 안에서 자신의 여행기를 집필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그 이름도 유명한 <동방견문록(Il Milione)>이 제작되었다. 폴로가(家) 사람들은 입만 열었다 하면 ‘백만’ 단위를 들썩이니 허풍쟁이들이 아니냐는 세간의 빈정거림을 희화화해 반영한 타이틀이기도 했다. 사람의 손으로 흙을 파서 강을 만들고 산을 옮기는 중국이라는 나라를 유럽 사람들로서는 상상하기 힘들었을 테니 마르코 폴로의 기행담을 곧이곧대로 믿기란 아무래도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마르코 폴로의 책은 결코 단순한 여행지가 아니다. 그의 견문록은 당시까지만 해도 인간 역사상 찾아보기 힘든 ‘인류학 보고서’이자 ‘동방여정의 지리지’였다.
13세기 이후 유럽이외의 다른 지역에 대한 탐사문을 작성했다는 것은 당시는 물론 오늘날에 이르러서도 대단한 성과물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여행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도 과장이나 허풍을 더했다는 비난을 종종 받고 있지만, 그렇다 해도 그의 서술체계를 들여다보면 단순히 개인의 호기심과 욕심을 채우기 위한 작업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각 지역 마다 정확한 방위, 골짜기, 거리, 언어, 종교, 동식물의 구성 까지 세세하게 기록한 형식은 한 사람의 인생이 오롯이 깃들여진 장편 논문이다. 그는 유럽의 대중들에게 바깥세상 이야기를 보다 생생하고 재밌게 알려주고 싶었던 것이다. 70세가 되어 이 세상을 뜨는 날까지 마르코 폴로는 황제에게 하사 받았던 보물들을 간직하며 사람들에게 두고두고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마르코 폴로가 눈을 감기 전, 임종의 자리에 모인 그의 친구들이 이와 같이 물었다고 한다.
“자 이제 여태 우리들에게 말했던 동방의 이야기가 모두 거짓이었다고 고백하게.”
그러자 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폴로는 손사래를 치며 이렇게 답했다.
“내가 그곳에서 본 것을 반도 다 말하지 못했는데 시간이 없으니 먼저 가겠네.”
길이 끝이 없다면, 탐험 역시 무한의 스펙터클일 뿐이다. 마르코 폴로는 자신이 걸었던 길을 다 말할 수 없는 숙명을 살았을 따름이다.
참고서적
"Marco Polo and the Discovery of the Word"/by Larner John/ Yale University Press New Haven and London
"The Travel of Marco Polo:a modern translation"/by Maria Bellonci/Fact on File Publications, New York
"The Travels of Marco Polo"(the Venetian) / revised from Marsden’s translation and Edited with Introduction by Manuel Konroff/ W.W.Norton & Company Ltd.
자료 및 그림 / 이 시 원
글 / 장 정 순
2008.04.25. [조인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