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길 떠나는 영화' ⑭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오래된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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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걷기-오래된 미래로 가는 단 하나의 선택
벌써 10년이 넘은 일이다. 습관처럼 학교 앞 서점에 책을 사러 들렸다가 책방 아저씨가 건네주는 책을 받았다. 어떤 선배가 책을 좋아하는 후배들에게 나누어주라고 맡겨 놓은 선물이었다. 그 선배는 이 책을 후배들이 읽었으면 하는 마음에, 책 한 모서리에 ‘사랑하는 학우들께 드립니다’라는 메모까지 남겨 놓았다. 누런 재활용지로 만든 이 책은 녹색평론사에서 출판된 <오래된 미래>였다. 표지에 라다크 여인의 환한 미소가 담겨 있는 책 말이다.
처음에는 ‘라다크로부터 배운다’는 부제가 다소 낯설고 생소했다. 1996년만 해도,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외침은 환경주의자들의 진보적 구호였을 뿐이다. 나 역시 이 책 속에서 ‘소녀들의 웃음’에 감동받기 전까지, 서구식 문명이나 발전에 대한 비판은 그저 기우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이 책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 그 후 <천상고원>을 만든 김응수 감독에게 라다크 이야기를 다시 듣게 되었다(이미 ‘길 떠나는 영화’에서 소개했던 것처럼 김 감독의 프로젝트는 <오래된 미래>로부터 영감을 얻었다). 김응수 감독은 라다크를 경유하면서 잃어버린 자신을 찾는 여행을 다시 지속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며칠 전, 침대에 푹 퍼져 있다가 <오래된 미래>가 번쩍 떠올랐다. 바로 벌떡 일어나 책장을 뒤졌고 다행히 이 책을 찾아낼 수 있었다. 다행히 DVD타이틀 더미 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남아있었다. 소풍을 가는 아이처럼 들떴다. 5회 서울환경영화제에 찾아온 저자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서였다.
난 헬레나에게 첫인사로 이 책을 꺼내놓았다. 그리고 어떤 선배가 얼굴도 모르는 후배들에게 이 책을 사서 나누어준 선행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이것이야말로 라다크로부터 배운 삶의 지혜가 아니겠냐는 의미에서였다. 이야기를 들은 그녀는 놀랍다는 답변과 함께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게다가 김응수 감독이 환경단체의 후원을 받아, 현재 정부의 대운하정책을 비판하는 영화를 찍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꺼내놓자 상당한 관심을 표명하기도 했다. 그녀는 이미 소고기 수입문제로 한국이 처한 상황이나 시민들의 자발적인 촛불 집회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헬레나는 스웨덴 출신의 언어학자이자 사회운동가다. 자신이 설립한 에콜로지 및 문화를 위한 국제협회(ISEC)와 라다크 프로젝트의 상임이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1986년 대안적 노벨상으로 불리는 ‘바른 생활상(Right Livelihood Award)’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녀는 16년간의 라다크의 생활을 토대로 해서 1992년 <오래된 미래>라는 책을 내놓았다. 그리고 1년 후 이 책에서 주장한 것들을 요약한 60분 분량의 다큐멘터리를 내놓았다.
이 영화가 담고 있는 주제는 책과 일맥상통한다. 히말라야 고원에 자리 잡은 한 유서 깊은 공동체 라다크(작은 티베트로 불림)에 대한 생생한 현장보고와 서구에서 들어온 근대화 과정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다. 미학적이거나 실험적인 다큐는 아니지만, 지금 다시 봐도 그 커다란 의미는 결코 퇴색되지 않는다. 라다크는 비록 자원은 부족하고 기후는 혹독하지만 천 년 이상 번영을 누려온 곳이다. 환경을 거스르지 않는 그들만의 지혜와 공동체 생활로 행복한 삶을 향유할 수 있었다. 헬레나가 처음 이곳에 와서 사람들을 만났을 때, 자신을 불행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라다크 주민들은 거리낌 없이 이웃을 돕고 도우며, 자급자족의 생활을 즐겼다. 라다크 사람들은 모두 집을 지울 줄 아는 기술도 갖고 있었다. 이들에게 오늘날 우리들이 겪고 있는 사회 계층의 문제나 빈부의 격차는 없었다. 이들은 모두 하나였다.
당시 서구 문명에 대한 대안을 찾는 젊은 헬레나가 이상적인 라다크에 매료된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다. 이들은 대가족과 긴밀한 공동체 속에서 정서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안정된 삶을 살고 있었다. 서구의 가치관으로 도저히 알 수 없는 사회였다. 내면적인 평정을 누리며 물질적으로 욕심을 내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문화야말로 진정한 수수께끼였던 것이다.
그러나 서구 세계의 가치관이 여기도 폭풍처럼 밀려왔다. 1975년 개방 이후 라다크에도 맹목적인 개발이 시작되었다. 이로 말미암아 라다크 마을에는 환경 파손과 사회적 분열이 생겨났고, 인플레이션과 실업이라는 난제가 뒤따랐다. 그러자 주민들은 갑작스런 경쟁 체계에 내몰리며 가난과 불행을 느끼게 되었다. 서구문화에 대한 맹목적인 동경으로 젊은이들은 자신들의 문화에 대한 자긍심마저 모두 잃고 말았다. 이 슬픈 이야기를 보고 있으면 녹색운동의 고전이 된 슈마허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메시지가 떠오른다.
오늘날 산업화된 사회 속에서 사람들이 경험하는 고통은 라다크처럼 공동체의 붕괴로부터 시작된다. 자본과 권력의 집중과 문화적 획일화는 결국 사회적으로나 환경적으로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기 마련이다. 라다크의 고통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단순하고 확실하다. 바로 서구 개념의 ‘개발’이라는 것을 극복해야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단지 라다크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 전체(지구상의 모든 공동체)가 직면한 문제다. 서구식 산업주의의 길 말고도 사회발전의 대안은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하는 것이다.
“교육만이 희망이다.” 헬레나는 주장한다.
“우리 모두가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공유해야 한다. 한 개인의 힘으로 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쉽지 않다. 지금의 상황을 잘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글로벌 푸드 시스템의 순환 구조가 지역 사회의 실업 문제와 지구온난화를 일으키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잘 모른다. 이것을 알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교육이 필요하다. 그런 인식들이 모여야 세상을 바꾸고 치유할 수 있는 터전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녀의 이런 주장은 헬레나의 저서 <허울뿐인 세계화 Small is Beautiful, Big is Subsidised>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녀는 거대 기업에 의해 의식주가 마음대로 좌우되는 세계화에 저항하고, 작은 지역공동체의 부활을 통해 인간다움을 회복하자고 주장한다. 세계화가 파산, 실업, 경제의 붕괴까지 야기하는 전염성 불안정을 낳고 있다고 진단하며, 세계화는 ‘불가피하고 자연스러운 과정이 아니다’라고 일격을 가한다. 헬레나는 식탁에 오르는 먹을거리와 환경 문제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건전한 삶의 기초이기 때문이다. “우리와 지구를 치료하는 방법은 먼저 자연과의 접촉에서부터 시작 된다”고 말한다. 그렇다. 생태계의 재앙을 막는 것, 혹은 자연친화적인 삶은 걷기에 대한 실천으로도 가능하다.
헬레나도 자랑스럽게 자신을 ‘걷기중독자’라고 소개한다. 시민들이 걷거나 자전거타기 운동을 펼침으로써 도시에 공원을 증가시키고 가스 오염이나 석유 문제를 막을 수 있다. “걸을 수 있는 거리를 만드는 것은 우리의 권리다. 걸으면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삶이다”라고 충고해준다.
실제로 그녀는 해마다 라다크에 가면 자신의 숙소에서 일하는 직장까지 걸어 다니는데, 내리막길로 20분 정도 걸린다고 한다. 역시 숙소에서 야생의 환경으로 나가는 데도 20분 정도 걸으면 충분하다. 그렇게 운송수단이 없는 것이 결국 자연과 친밀한 삶을 만들어준다. 그녀의 말대로 현대 사회에 사는 우리들은 자연과 접하기 위해 너무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이며 도시 밖으로 나가야한다. 이것은 정말 불합리한 삶이다. 사막 고원에 사는 라다크인들, 그들의 걷기는 전통적인 환경에 의해서 필수적인 삶의 형식이었다. 걷는 거 이외에는 어떤 선택이 없었을 테니까. 그럼에도 그들 역시 오늘날 걷는다는 것, 산책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무한한 고마움을 느낀다. 그것이 자연과 하나 되는 것이자, 자신의 문화를 지키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렇다. 우리도 라다크인들과 다를 게 없다. 자신을 치유하고 자연을 다시 우리의 주거지 안으로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는 걷기를 실천해야 한다. 그것이 라다크의 여유 있는 걸음으로부터 배운 것이다.(*)
글_전종혁 <프리미어> 기자
2008.06.05.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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