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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박물관이 살아있다’ ① 해녀 박물관

최초작성 [JMnet 04.23 10:57] | 마지막 업데이트 [JMnet 04.23 10:57] 이 문서는 총 391번 읽혔습니다.


| 편집 | 물질로 삶을 캐다

“숨을 참다가, 참다가 바닷속을 나오면 눈앞이 노래지고 코와 입에서 피가 나오기도 했어.”

“물질로 잡은 전복, 돈이 궁해 다 팔았으니 너네한테 전복죽 한번 못 끓여준 게 한이여.”


어머니는 해녀였다. 17세 꽃다운 나이 때부터 물질을 시작한 어머니는 나를 낳고서도 산후 조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곧바로 바다로 나갔다고 했다. 나가서 소라와 전복, 미역을 캐다가 내다 팔아야 했다. 그 어렵고 궁핍한 시절에 어머니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다들 그랬단다. 어머니의 물질 이야기는 시작하면 멈추지 않는다. 속옷 위에 하얀 적삼을 입고 물에 들어갈 때는 그렇게 추울 수가 없었지만, 고무옷을 입으니 물질이 한결 따뜻해졌다며 해녀옷의 역사까지 이어졌다.

어머니는 더 이상 물질을 하지 않지만, 제주의 바다를 오르락내리락 하는 해녀들을 볼 때마다 어머니가 떠오른다. 검은 고무옷을 입고 수경을 덮어쓴 채 오리발을 뒤뚱거리며 물을 향해 걸어 들어가는 해녀들…. 주름은 깊고 선명하다. 손마디는 굵고 검다. 그런 해녀들은 모두 어머니다. 어머니의 가난과 궁핍한 삶, 벌거벗은 고난이 물 아래로 깊이 내려앉았다가 다시 떠올랐다.


테왁이 걸려 있는 제주의 초가
테왁이 걸려 있는 제주의 초가


해녀박물관이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도 한참을 모른 체 했다. 그곳은 고통의 전시장이 아닐까. 가난한 삶의 박람관은 아닐까. 알 수 없는 곤혹스러움 때문이었으리라. 바다에서 몸부림쳤던 기록들을 다 이해하기 힘들었을 테고, 그 기록 뒤에 배인 숨결들을 다 받아들이기도 어려웠을 테니…. 그러나 역시 가지 않을 수 없었다. 멀어지려한들 멀어질 수 없는 삶 혹은 현실처럼.

단순성. 설렁설렁 박물관을 돌아보던 중에 가장 먼저 떠오른 말이었다.

물질 장비들은 모양새가 복잡하지 않다. 쓰임새 역시 단순하다. 해녀들의 옷은 희거나(적삼) 검을(고무옷) 뿐이다.

소라를 캐고 전복을 따는 데 쓰이는 연장들은 곧거나 구부러져있다. 덜 하지도 않고 더 하지도 않고 오로지 딱 쓰임새에만 충실하다. 작살은, 그 단순한 직진성은, 그래서 강인했다. 화살촉처럼 물고기에 박히면 아무리 용을 써도 떨쳐 내지 못하는 ‘악착’과 바닷물의 저항을 뚫고 목표까지 가서 박힐 힘을 실어 나아가는 대나무, 해녀의 힘을 고스란히 작살에 전달하는 고무줄까지, 빼거나 덧붙일 그 아무 것도 필요할 것 같지 않았다. 단순하다. 그리고 강하다.


물질에 쓰이는 연장들
물질에 쓰이는 연장들
바다 아래 보이지 않는 물의 저항을 화살촉처럼 뚫는 작살
바다 아래 보이지 않는 물의 저항을 화살촉처럼 뚫는 작살


제주 해녀는 힘이 세다. 가족 앞에서, 바다 앞에서, 제주 앞에서도 강인했다. 해녀는 척박한 환경에서 가족들을 먹여 살렸고, 가족들을 위해 바다로 들어가 바다를 이겨냈고, 제주 역사를 만들어갔다. 자신의 몸이 삭을지언정 물질을 멈추지 않았다.

박물관에서 발길이 가장 오래 머문 곳은 ‘불턱’이었다. ‘동그랗게 돌담을 쌓아 바람을 막고 노출을 차단한 곳으로, 불을 지펴 추위를 녹이며 해녀들이 잠수복을 갈아입는 노천 탈의장’이라는 설명과 함께 인형과 모형 등으로 해녀가 물질을 막 끝내고 불턱으로 돌아오는 장면을 재현해 두고 있다.


해녀들이 물질하는 모습
해녀들이 물질하는 모습
물질을 끝낸 해녀가 옷을 갈아입는 곳, 불턱
물질을 끝낸 해녀가 옷을 갈아입는 곳, 불턱


“엄마 온다!” 바닷가에서 그 작은 몸으로 바람을 맞으며 엄마를 기다리던 소녀가 달려 나가는 풍경은 제주 앞바다에 흔했다. 울며 보채는 어린 동생을 들쳐 업고 어르고 달래다 지친 딸의 기다림은 하루 종일 파도가 되어 부서지고 또 부서졌을 것이다. 어쩌면 술 취한 아버지를 피해 도망 나온 곳이 바로 바다였을지도 모른다. 바닷가는 도망칠 수 있는 마지막 자리다.

더욱 애잔한 풍경도 있다. 소녀만큼 달릴 수 없는 할머니…. 어머니의 어머니는 역시 해녀였을 것이다. 물질이 무서운 것을 아는 어머니의 어머니들은 딱 하나의 바다의 용왕님께 딱 하나의 기도를 드리며 산다. ‘제발 내 죽기 전에 내 딸 먼저 데려가지는 마오.’ 빌고 또 비는 어머니의 어머니들, 역시 해녀였던 그네들의 입 모양을 기억한다. 해녀박물관은 바다에 접해 있다. 박물관을 돌아보고 나오면 거세게 일렁이는 바다를 마주하게 된다. 박물관을 나서는 순간 진짜 박물관이 열린다. 저 멀리부터 밀려오는 파도는 해녀들의 거친 숨소리와 함께 부서진다.


제주도의 옛 모습
제주도의 옛 모습



-홈페이지 : http://www.haenyeo.go.kr

-위치 :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

-전화 : 064-782-9898


글 강철하 프리랜서

2008.04.23.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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